토박이말을 지키고 가꾸는 터줏이야깃꾼 윤흥길
윤흥길은 한국 사실주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한 작가로 꼽힌다. 염상섭이나 박태원이 보여준 객관적 사실 묘사의 충실성을 이어받으면서도, 범속한 현실을 넘어서는 환상적 기제의 효율적 도입으로 작품 미학의 질적 비약을 시도한 점에서 윤흥길 소설의 의의는 더욱 빛을 발한다.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회색 면류관의 계절>이 당선되어 등단한 그는 이청준, 조세희, 황석영 등과 더불어 1970년대 소설사의 성좌와도 같은 작가로 눈부시게 성장한다. 특히 분단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장마>, <무지개는 어떻게 뜨는가>를 비롯하여, 산업화의 와중에서 소시민의 가난과 자기소외 양상을 그린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독재의 억압 문제를 그린 <완장> 등 여러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겼다.
윤흥길 소설은 역사와 현실의 문제성을 예리하게 포착하면서도 그것을 날것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장마>를 비롯한 그의 분단소설에서 보이는 양상, 예컨대 한국전쟁을 직접 체험한 세대들이 전쟁 현장과 그 상처를 직접적으로 제시했던 방식과는 달리 어린 아이의 관찰자적 시선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러나 더 많은 성찰의 여백을 남겨두고 있는 점이나, 소외와 억압 등 사회 현실의 문제를 그릴 때도 송곳 같은 풍자보다는 웃음을 동반하는 부드러운 풍자를 통해 반성적 사유를 유도하고 있다는 점 등등에서 그의 작가적 특성을 알게 된다.
아울러 모국어에 대한 윤흥길의 애착은 특기해 둘만한 것이다. 그는 토박이말을 지키고 가꾸는 터줏이야깃꾼이다. 그가 되살려 쓴 모국어 속에 오래된 우리네 민족 심상이 잔잔하게 그리고 의미있게 흐른다. 웅숭깊은 토박이말로 따스한 화해의 말길을 열어온 그의 소설을 통해, 우리는 잃어버린 과거를 반추해볼 수 있음은 물론이려니와 미래로 열리는 새로운 인간의 길을 추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우찬제/문학평론가, 서강대 교수)
- 전북 정읍 생.
- 은행원이었던 아버지 윤상오와 어머니 조옥성 사이에 손위 누이 하나를 둔 6남매의 장남부모님의 의견대로 법관이 되려던 꿈을 포기, 전주사범학교에 진학
- 1964년 공군 제대 후 익산군 춘포국교 교사로 발령, 그후 부안군 진서국교 석포분교로 근무처를 옮긴 다름 습작에 몰두
-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회색 면류관의 계절> 당선, 문단 등단
- 1973년 원광대학 국문과 졸업. 같은 해 문학과 지성에 대표작 <장마> 발표